1982년 대학에 입학한 저는 거의 대학 생활 4년을 학생운동에 참여한 시간의 나날이었습니다. 민주쟁취, 민족통일, 민중해방을 외치며 교정에서 또 거리와 광장에서 독재타도, 직선쟁취등 구호와 스크램을 짜며 목 놓아 외치고 또 외친 그 단어 민주주의 최루탄 가스에 울었고 애국가 제창에 울었고, 동지의 눈물에 울며 때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조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그렇게 나의 청춘을 바쳤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초급장교 교육을 받을 무렵 이한열. 박종철 후배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순교적 헌신으로 6.29 선언을 통해 지금의 5년 단임제 개헌을 했습니다. 38년 동안 사용되고 있는 5년 단임의 권력구조 이제는 개헌과 정치개혁을 통해 시대정신과 다양성과 융합에 맞는 선진정치를 이루는 것이 조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으로 차디찬 감옥에서 헌신과 희생으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천한 민주주의자들에 대한 우리들의 예의입니다. 대통령 4년 중임제, 내각책임제, 이원집정부제, 결선투표제 도입등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한 진보적 실천을 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제22대 국회의 숙제이며 동서통합, 남북통합, 좌우통합을 위한 조국의 미래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지도자들 되길 기도
이태준은 1883년 11월 21일 경상도 함안도호부 평관면 평광리 (현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평광마을)에서 아버지 이질(李瓚)과 어머니 경주 박씨 박평암(朴平岩)] 사이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문공부를 하다가 1911년 세브란스 의학교를 졸업한 후 의사로 활동하던 중 안창호 선생의 권유로 독립운동 단체인 ‘청년학우회’에 가입해 활동하였고 한국에서의 항일 활동 중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될 상황에 처하자 중국을 거쳐 몽골로 망명했고, 이후 몽골의 고륜(울란바토르의 옛 이름)에 병원을 개원하였다. 1919년 김규식(金奎植) 선생이 파리평화회의에 참석할 때, 여비 전액을 지원했고, 김원봉(金元鳳)의 의열단 활동을 지원하여 새로운 폭탄 제조법을 전수하려고 하였고, 소련 공산당의 지원금을 받아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책임도 맡는 등 독립운동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후 이태준은 몽골에서 몽골인이 고통받았던 전염병과 질병 치료에 헌신을 다해, 몽골인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되었고, 몽골 칸의 어의로도 임명이 되었다. 몽골 마지막 칸 복드 칸의 주치의였다고 하며,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 동의의국(同義醫局)을 세워 의료활동을 병행했다고
아버지, 이 몸 당신께 바치오니 좋으실 대로 하옵시오. 저를 어떻게 하시든지 감사드릴 뿐, 저는 무엇에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저와 모든 피조물 위에 이루어진다면 이밖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저의 영혼을 당신 손에 도로 드립니다. 당신을 사랑하옵기에 이 마음의 사랑을 다하여 당신께 제 영혼을 바치옵니다. 당신은 제 아버지시기에 끝없이 믿으며 남김없이 이 몸을 드리고 당신 손에 맡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저의 사랑입니다. - 샤를 드 푸코 - 샤를 드 푸코는 프랑스에서 손에 꼽을 만한 귀족 가문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섯 살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연이어 잃는다. 그리하여 유산을 모두 물려받고 돈밖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젊은이로 자란다. 돈이 많다는 것은 엄청난 재앙이다. 샤를 드 푸코도 이 재앙에 휩쓸려 간다. 그는 어머니가 그토록 바랐던 신앙을 버렸고 여자들을 얻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내 삶의 남은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신앙이란 무엇이며 선함이란 또 무엇인가,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시대에 초갈등 사회 대한민국의 앞길과 검투사 정치와 서로 물고 뜯는 이 정글의 혈투 같은
우리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워 지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중화학 공업입국 이래 세계경제 10위권의 대한민국이 되었지만 세계7위 이내의 진정한 세계중심국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공업입국의 하드웨어중심의 생산과 조립의 나라에서 노동집약적 기술에서 벗어나 벤처와IT 강국의 장점을 활용해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쇼프트웨어의 신창조경제 생명경제. 농업경제로의 대전환을 이루어야 나라 경제의 미래가 있고 세계7대 강국으로 진입할수 있다. 중화학공업에서 IT와 벤처와 반도체을 뛰어넘는 새로운 생명경제와 농업경제의 의학과 바이오와 농업과 생명의 생로병사를 연구하는 약사와 의사와 농업과학자가 많은 생명경제. 농업경제. 창조창업상상경제 강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구글.아마존. 알리바바등 세계경제는 생산에서 벗어나 창조력과 창의적.상상 경제로 나아가고 있다 X축과 Y축에서 생산기술과 창조기술과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남을 따라하는 시대에서 창조의 기술시대로 세계는 빠르게 이동 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중 Y축 즉.제로에서 10을 창조하는 대표적 기업이 네이버 이다. 나머지 삼성반도체. 현대자동차등 X축중심의 생산기술의 시대는 분명 점점 저물어 가고 있다. 반도체시장의 불황은 이미 시
누구나 한번은 눈부신 인연을 만나게 된다. 평범하지만 그만의 색깔이 있는 사람 나의 못난 면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 지나고 나면 함께 한 시간이 참 편안한 사람 아니, 실은 만났을지 모른다 오랜 시간 내 곁에, 내 주위에 가장 가까이 머물렀던 사람 나의 시간을 묵묵히 바라봐 준 사람 고마움과 감동이 함께 쌓여 온 사람 지나고 나니 참 감사하다. 모든 것이 감동이었다.. 문경에 오니 모든 것이 잘 보인다.. 휴식과 사색의 시간에 한국사회의 복잡한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이고 모든 것이 감사하다.. 한국정치 환경에 크게 실망했고 우리사회 구성원이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배려하는 공존의 사회되길 기도하고 소망하며 나와 나라 나와 민족 나와 국민 나와 우리사회를 향한 나의 소명과 나의 사명은 잘 감당하고 있는가.. 스스로 묻고 답하며 늘 깨어 빛나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한다. 내려놓고 비우면 작은 것에 더 감사한다 감사한 분들이 떠오르는 주일 아침 입니다. 은혜롭고 복된 주일 되시길 기도 합니다. 우리 서로 사랑 합시다. 서현정치연구소 이사장 정치학박사 김현욱
최루백은 고려시대 효자로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조선 세종 14년(1432) 왕의 명을 받아 충신·효자·열녀를 뽑아 그 덕행을 찬양하는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란 책을 편찬·발간할 때, 그의 행적이 수록되었다는 사실로서도 그의 효행에 대하여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본관은 수원으로 戶長을 지낸 수원 최씨 始祖 최상저의 아들이다. 그의 나이 겨우 15세 때의 일이다. 그의 아버지 상저는 호장이라는 향리의 으뜸 구실을 하는 직책에 있으면서 틈 있을 때마다 사냥을 다녔다. 그는 본래 성품이 어질며 재주가 있어 누구보다도 활쏘기를 좋아했을 뿐 아니라 근처 산에 돌아다니면서 활솜씨를 발휘하여 짐승을 자주 잡아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최상저는 평시와 같이 활을 메고 산에 올라갔다. 마을 어귀를 벗어나서 산으로 접어들어 이리저리 올라가고 있을 즈음이었다. 이때 활을 쏠 준비조차 안하고 태연하게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엄습을 해 오는 것이 아닌가. 그는 엉겁결에 몸을 피하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으며 급기야는 호환을 당하고 말았다. 근처에서 나무를 하던 동네사람들이 있었지만 이 광경을 보고는 겁에 질려 떨고만 있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산중턱
대한민국 정치 수준이 왜 이모양 이꼴이 되었는지 참 많이 안타깝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연일 계속되고 있는데 우리네 정치권은 국익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친일.친북.친미. 친중.종북 놀음에 이전투구 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의 힘든시간을 우리민족이 보낸이유도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발생 한 역사적 수치이다. 정치지도자들 정신 좀 차려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지금 서로 하는짓에 국민들의 참을성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정치권 정화와 정풍운동이 필요하다. 이대론 발전 없다 눈만 뜨고 해만 뜨면 여야 정치권 모두가 내로남불의 궤변으로 싸우고 또 싸우는 같이 망하는길을 가고 있다. 망국병 정치 사과와 반성도 전혀 없는 현 정치권의 여야 정치인들의 민낮. 부디 국민을 두려워하고 국민을 무서워 하길 기원한다. 이제 이런식의 미래도 없고 국민도 없는 정치 여야 모두 발전없는 정치로 정쟁에 몰두하며 국민과 나라는 전혀 없는 후진적 정치를 지속하면 분명 국민들의 존엄한 주권인 선택권과 저항권과 정치교체권으로 여야 정당 모두을 퇴출시킬것이다. 망국병 양당 정치 정말 한계점에 도달했다. 역사의 필연. 새로운 정치 시작 될수 있음을
19세기 중반 조선은 은둔의 나라였다. 1866병인양요,1871신미양요 ,1875운요호사건.통상과 개항을 요구하는 사건들은 흥선대원군 쇄국정책으로 기회를 잃었으나 그 결과물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새로운 도전과 응전의 시대를 맞는다. 그러나 새로운 도전과 응전은 서구열강의 각축장과 조선의 무능과 무지로 우리 기대와는 반대로 일본 식민지로 전락하는 운명을 맞는다 별기군을 비롯한 신식군대에 반발한 구식군대의 차별에서 오는 1882 임오군란은 청을 끌어들여 진압하고 제물포조약을 체결한다.김옥균을 비롯한 1884 갑신정변은 청의 개입으로 3일천하로 끝나고 1884 한성조약을 체결한다. 그로부터 10년뒤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으로 동학농민운동(1894)은 청일전쟁 전장터가 된다.갑오개혁을 통한 조선의 근대화는 역부족이었다.청일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나면서 1895년 민비가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당하는 을미사변이 일어난다. 조선은 김홍집 온건개화파,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등 급진개화파, 이항로 최익현 위정척사파, 대원군파, 민비파 건곤일척 소용돌이는 외세를 끌어들이고 세계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었고 대원군 민비 사후 고종은 1896 '아관파천' 함으로서 러시아에 의
(齊)나라 선왕(宣王)이 맹자를 초청해 가르침을 받을 때 이야기다. 맹자가 신하에게서 들었다면서 왕께서 희생으로 끌려가는 소를 보고 애처로워 양으로 바꾸라고 한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새로운 종이 주조되면 희생물을 죽여 피를 바르는 흔종(釁鐘) 의식을 치르는데 끌려가던 소가 눈물을 흘렸다. 아무 죄도 없이 사지로 끌려가는 것을 왕이 못 보겠다며 놓아주라 하고, 흔종을 '폐지하는 대신 양으로 소를 대체하라(何可廢也 以羊易之)'고 한 명령이 사실인지 물었다. 선왕이 그렇다고 답하자 맹자는 왕 노릇 하기에 충분하다고 칭찬을 하였다. 일반 백성들은 큰 재물을 아끼기 위해서 생각을 한다고 하지만 사지로 끌려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설명한다. "그것이 바로 인을 실천하는 방법이니, 소는 직접 보고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是乃仁術也 見牛未見羊也)." 애처로운 소의 모습을 보고 측은지심 (惻隱之心)이 일어난 것이니 왕이 어진 마음을 갖고 백성을 아끼는 정치를 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양은 도살될 때 눈물을 흘리는지 알 수 없어 본 것과 보지 못한 것이 생사를 가른 셈이다. 맹자가 소의 눈물만 측은하게 생각하고 보지 못한 양의 희생을 대수롭지 않게 본
[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 정적제거와 패거리들만의 향연으로 전락한 독과점 거대양당제, 이제 청산을 통해 새로운 정치질서와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축으로 새로운 권력구조의 변경은 시대정신이다. 미국의 민주주의 양당제도가 서로 물고 뜯는 패거리 양세력들간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어 민주주의의 상징 미국의회가 점거되고 농성의 장이 되었고 트럼프 탄핵발의에 이어 조바이든 대통령의 탄핵을 미하원의장이 발의하는 등 양당제도의 한계와 모순과 패거리들의 묻지마 지지와 맹목적 지지로 양당제가 곤경을 겪고 있다. 미국의 양당제 대한민국의 양당제 위기이다. 한국의 정치개혁 필요한 이유이다. 상대를 존중하며 서로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며 다양성도 인정하며 서로 머리를 맞대고 협치와 소통으로 협력하여 선을 행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이다. 한계치에 도달한 대한민국의 정치환경이다. 아프고 또 아프다. 우리의 정치는 왜 이모양 이꼴 밖의 후진정치만 자행되고 있는가? 아프다, 국민의 다양한 정치학습을 통한 국민의 정치적 성숙도를 높이는 정치 계몽운동의 전국민적 정치 학습과 정치 공부가 절실하다. 내 편만이 정의인 양당제도 이제 정말 나라와 국민을 위해 청산되어야 한다. 정치선진국 유럽